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릭 하이든 (문단 편집) === '''운명의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을 앞둔 미국 스포츠계는 하이든에게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고 대회 조직위도 하이든을 개회식 선서 대표 선수로 뽑으면서 하이든 띄우기에 나섰다.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하이든은 1000m, 1500m에서 세계기록을 작성하고 스프린트 대회 4연패에도 성공하면서 컨디션이 절정에 올라있었다. 대회 첫 경기였던 500m는 하이든이 가장 취약한 종목이었다. 더욱이 같이 뛰는 선수는 당시 세계기록 보유자였던 소련의 예브게니 쿨리코프. 그러나 쿨리코프는 레이스 도중 살짝 삐끗하며 2위에 머물렀고 하이든은 올림픽 기록을 경신(38.03)하며 쿨리코프와 0.34초 차이로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 때는 단 한 번의 레이스로 순위를 결정했다. 이후 1,2차 합산으로 방식이 바뀌었다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부터 다시 단판제로 돌아간다.] 이튿날 5000m에서도 올림픽 기록을 작성하며 2위와 1.5초 차이로 두 번째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1000m에서는 2위와 1.5초차, 1500m에서는 빙판 위에 파인 홈에 자세가 흔들렸음에도 2위와 1.37초 차이[* 하이든의 기록은 1:55.44. 1:56.81로 2위를 차지한 노르웨이의 K. Stensh Jemmet은 하이든과 같은 조에서, 즉 바로 옆에서 레이스를 했다.]의 압도적인 격차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1위와 2위의 격차는 1000m 0.04초, 1500m 0.003초였다. 1000m와 1500m에서 1위와 1초 이상의 차이면 보통은 10위권 정도 성적이다.] 두 종목에서도 모두 올림픽 기록을 세우며 기록행진도 이어나갔다. ~~[[2008 베이징 올림픽|2008년]] [[장미란]] 돋네~~ || [[파일:external/cdee104556139674897aff0a2474fe404011fa0d1682c82612c2fce0660cc44f.jpg|width=100%]] ||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서의 하이든의 사상 최초의 전종목 석권이 눈앞에 닥쳐오자 전세계는 흥분에 들끓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하이든 같은 근육을 갖고 있는 선수들은 있어도 하이든 같은 정신력을 갖고 있는 선수는 없다."고 극찬했고, 스피드 스케이팅 마지막 경기였던 10000m 경기에는 수만 명의 관중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정작 하이든은 그 날 컨디션이 썩 좋지 못 했다. 전날 밤 [[레이크플래시드의 기적|미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소련을 꺾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고는 흥분한 나머지 잠을 제대로 못 잔 것이다.[* 당시 소련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세계최강으로 [[NHL]] 올스타와의 경기에서도 2승 1패를 했다. 더욱이 당시에는 NHL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갈 수 없어서 미국 대표팀은 대학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미국 전문가들조차도 소련이 이길거라고 예상했다.] 늦게 일어나서 빵 몇 조각으로 허겁지겁 아침을 때우고 경기에 나서야 했는데 이 경기에서 종전 기록을 무려 6초나 당긴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버린다! ~~[[다리 따위는 장식입니다|휴식 따위는 장식입니다. 다른 선수들은 그걸 몰라요.]]~~ 이로써 '''사상 초유의 남자 부문 전종목 석권'''이 실현되었다.[*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는 이미 전종목 석권 사례가 있었다. 소련의 리디아 스코블리코바가 [[1964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에서 500m, 1000m, 1500m, 3000m에서 4개의 금메달을 땄다.] 그 결과 '''동계올림픽 최초의 5관왕'''이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유일하다. 또한 '''동계와 하계를 통틀어 개인 종목에서 5관왕을 한 최초의 선수'''다.[* 이후 1992년 비탈리 셰르보(기계체조, [[독립국가연합]](국적은 [[벨라루스]])), 2008년 [[마이클 펠프스]](수영, 미국)가 개인종목 5관왕에 성공했다.] 스피드스케이팅 500m와 10000m를 동시에 우승한 것은 [[육상]]으로 치면 100m와 [[마라톤]]을 몽땅 우승한 것과 같은 위업이다. 스포츠 의학계에서는 더이상 이런 사례가 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기고 있으며, 의학을 전공한 하이든 본인도 "공부하면 할수록 내가 전종목을 석권한 게 더더욱 믿기지 않는다. 내 감독님만이 그 이유를 알까?"라고 인터뷰했다. || [[파일:external/69242b3cdfdcafddc8ce989356a4a47f26899167f7abcf8ad06484a009f5488a.jpg|width=100%]] || 이 올림픽에서 미국은 금메달 6개로 소련(금메달 10개), 동독(금메달 9개)에 이어 종합 3위를 기록했는데 아이스하키 1개[* [[레이크플래시드의 기적]] 맞다.]를 제외한 나머지 5개를 하이든 혼자서 따냈다. 종합 4위였던 [[오스트리아]]가 금메달 3개였으니 하이든 단독으로도 종합순위 3위였던 것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 8개를 목에 건 [[마이클 펠프스]]가 단독으로 종합순위 10위였으니까 하이든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알 수 있다. 올림픽 후 하이든은 아이스하키 대표팀과 함께 백악관에 초청받아 [[지미 카터]] 대통령을 접견했다. 또한 오스카 마타이센 상을 4년 연속 수상한 것은 물론[* 이것도 하이든이 유일하다. 네덜란드의 아르트 스헹크, 독일의 군다 니만슈티르네만이 3번으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한 해 최고의 미국 아마추어 선수에게 수여하는 제임스 E. 설리번 상(James E. Sullivan Award)도 수상했다. 하이든은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지만 "근데 금메달 5개로 뭘 할수 있나요?"~~한국이면 연금이라도 받을텐데 말이지~~라고 인터뷰 했을 만큼 소탈했고 자신의 명성과 인기를 이용해서 부를 쌓지도 않았다. 실제로 인터뷰를 제외한 수많은 상업광고나 방송출연 제의를 모두 거절했다. 올림픽 직후 열린 올어라운드 선수권에서 ~~[[나는 관대하다|관대하게도]]~~ 종합 2위를 기록한 뒤 그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은퇴를 선언한 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